육아를 하다보면 참 어려운 것들이 많다.
관련해서는 다른 블로그에 작성하여 내용은 넘어가고.
결국은 둘 중에 하나이다. 돈을 포기하며 아이에게 무엇이 좋을지 고민하는 삶,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부분들을 돈으로 대체하는 방법.
둘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다.
꼭 돈을 써야만 아이에게 좋은 것도 아니기에 돈 이외에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삶도 의미가 있고,
돈을 써서 해결하는 것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둘 중 결국 부모와 가정의 리더가 그 길을 정하고 가면 그 뿐이다.
그 사이에서 일어날 결과물들은 그것을 선택한 리더가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중하며 밸런스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둘 중 무엇이 현재 나의 상황에 더 맞을까를 생각해본다면 후자이다.
나의 카르마가 그렇다. 서울에 사는 아내와 결혼을 했고, 서울 생활을 10년 넘게하였다.
서울 생활은 정말 돈이 없으면 불가능한 삶이다.
시골로 내려가 땅을 밟게하고 밖에서 놀게 하면 나도 좋겠지만 지금은 여기에서 해결해야할 것들이 있다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선무당 같을 수도 있지만 나와 아내, 가족들이 묶여 있는 카르마와도 관련되어있다. 아내와 아내 친정과의 관계, 나와 나의 부모님과의 관계,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로의 인연과 연결고리를 모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끊어내고 딱 잘라서 선택하면 좋겠지만, 내 스스로에겐 아직 그럴 용기가 없을 뿐더러, 나 역시 시골생활을 접고 서울에 온 만큼 해내고 싶은 것들도 있다.
물질이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고민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렇기에 좀 더 넓은 실내 공간과 아이와 부모의 공간분리, 식사와 생활의 공간 분리, 서울에서 그래도 환경(자연과 사회를 포함한다)이 좋은 곳을 마련하는 것이 첫번쨰이다. 그런 공간을 서울에서 마련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얼마전에 알아보니 전세만 7억정도이다. 매달 100-200정도 월세로해도 5-6억은 있어야 한다.
이 시대가 나에게 준 사명이란 무엇일까? 내가 왜 이 결혼을 선택했고, 왜 아이를 낳았을까? 아이가 아내가 이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카르마란 나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감에 있어서 풀어 나가야할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꽃은 꽃의 사명이 있고, 열매는 열매의 사명이 있다. 그 꽃들도, 열매도 천차만별로 서로 다르다.
인간도 하나의 자연이다.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 법칙은 질서는 무질서를 향해가기에 그에 대한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에너지는 한번 사용하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자연물질은 변형 되며,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나라는 질서는 죽음과 사라짐이라는 무질서를 향해간다. 그 와중에 우리의 에너지는 스스로를 질서의 형태로 끊임없이 만들어 가고 있으며 거기에는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삶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한번 쓴 에너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삶에서 어떤 질서를 만들어갈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한 인간이 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것이 삶의 에너지, 즉, 카르마이자, 삶의 사명, 삶에서 내가 해야하는 것들이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좀 어렵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의 에너지를 써서, 서울에 온 것, 그리고 아내를 만난 것, 에너지를 들여 결혼을 하고, 또 남자와 여자라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 씨앗을 주고 10개월동안 품고, 지켜주며 나와 같은 유전자인 새 생명을 탄생 시켰다는 것. 이것이 무질서로 가는 우주에서 한 인간이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낸 질서라는 말이다. 그 질서들은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또 무질서를 향해 달려간다. 이것도 예를 들면 이렇다. 방을 치우지 않으면 더럽고 어질러진다. 반드시 청소라는 에너지 형태가 있어야 깨끗한 방이라는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교육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 사회화가 되지 않아 사회생활도 불가능하다. 이 아이들은 반드시 부모든 어른, 선배가 에너지를 써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화가 필요하다. 즉, 새 새명은 질서를 만드는 것으로 태어났지만 그대로 방치하면 또 다시 무질서로 가는 것이다. 그 무질서로 가는 아이를 다시 질서로 만드는 것이 부모교육, 학교교육, 친구들과의 관계, 스스로가 만드는 삶의 태도이다.
즉, 흔히 업보라고 하는 카르마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인류 아니 자연의 수많은 에너지 속에서 확률로 만들어진 하나의 질서. 예를들어 수만가지의 경우에 수에서 내가 서울에 왔고, 수만명의 여자중에 아내를 만났고, 수백 수만개의 정자와 난자속에서 하나의 씨앗과 하나의 씨앗이 만나 아이는 태어났다. 그래서 한 인간이 태어나서 만들어지는 질서는,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하게 본인 스스로와 부모와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모의 뿌리, 조상, 이 사회, 국가, 세계, 범 세계적인 유니버셜한 자연적 과정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하는 선택과 과정은 나만 생각하는 판단이 아니라 더 넓게 보고 판단하고 선택 할수록 사회의 흐름을, 시대의 흐름을,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자연, 우주적인 관점까지는 아직 볼 자신이 없다. 딱, 시대와 사회를 놓고 본다면, 나의 선택을 결국 정해져있다. 이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해야하느냐의 문제이다. 그것은 내가 이 자본주의라는 시대와 사회속에서 잘 살아남으며 즉, 잘 질서를 만들어가야 하며 거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따른다.
다시 돌아가보자, 내가 선택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다 시대와 사회가 만든 것, 선대와 부모님의 관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 온것, 결혼을 한 것, 아이가 있는 것 모두다 말이다. 그렇게 인연의 고리로 묶여 모두 나의 업보, 카르마가 되었다. 카르마는 실타래이다. 엔트로피에 의해 묶이고 무질서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삶의 에너지를 써서 이 업보를 잘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어떤 사명인가?
환경을 극복하는 두가지 방법 중 결국 다시 돌아와 자본주의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잘 활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속된말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도 사업도 다른 무엇도 다 필요 없다. 화폐라는 종이는 허구이지만 모든 사람이 허구로 인하여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이 신뢰한다는 이 화폐를 잘 지배하는 자만이 자본주의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다. 이건 누군가 위에서 지배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 화폐를 잘못 사용 하면 나도 죽을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이 이 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나와 가정에서만의 카르마를 해결하라는 말이 아니다. 시대와 세상의 카르마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골에 가는 것도 모든 것도 좋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실타래를 풀지 않으면 어딜 가든 똑같다. 나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이 실타래를 풀어내야만 한다.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임을 다시금 느낀다. 그 실타래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이 자본주의라는 잘못된 억압과 카르마로 얽혀있는 나와 같은 많은 사람 역시 도와줄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도와주기 위해서는 같은 실타래를 가지고 있는 나부터 그걸 풀어 내야 한다.
내가 투자를 하려고 하고, 어너지를 써서 어떻게든 나의 투자에서 수익구조를 만들고자 함은 그런이유이다. 이 1단계도 못하면 2단계 3단계로 나아갈 수 조차 없다. 그러니 이것에 더 먼저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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